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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습의 생애와 문학 (1)

by 윤쓰다 2022. 1. 20.

 

김시습 인생 

김시습

- 생육신(김시습, 원호, 이맹전, 조려, 성담수, 남효온)의 한 사람
- 조선 전기 학자, 문인, 서예가
1435 출생 (한성)
1449 (15세) 모친상 (선사 장씨)
1455 (21세) 계유정난 소식을 듣고 승려가 됨 (법명: 설잠)
1465 (31세) 경주 금오산에서 「금오신화」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 를 비롯한

「유금오록」, 「관동일록」, 「관서록」, 「관동일록」, 「역대연기」 등 1600편의 시가 기록
1481 (47세) 안씨부인을 얻어 아들을 낳았으나 오래지 않아 처자 모두 死
1493 (59세) 사망 (병사)
속명 오세동자, 승명, 설잠, 동봉, 매월당 등
시호 청간공
본관 강릉 (신라 왕자 김주원의 후예, 고려 시중 김태현의 후손)
부친 음사로 충순위를 지낸 김일성

1945년 서울 성균관 부근에서 태어났다. 3살 때부터 외조부로부터 글자를 배우기 시작, 한시를 지을 줄 아는 천재였고, 5세 때 시를 지을 줄 알아 신동이라는 소문이 세종에게까지 알려진다. 세종은 직접 김시습을 시험해보고 장차 크게 될 인물이라며 선물을 내리기도 한다. 이때 오세동자라는 별호를 얻게 된다.

그러던 중 1449년 어머니를 여의고 3년상을 치르게 된다. 얼마 뒤 그를 어머니처럼 돌봐주시던 외숙모가 별세했으며 아버지는 재혼하였으나 병을 앓고 있는 상황이었다. 김시습 본인은 남효레의 딸과 혼인하였으나 가정이 원만하지 못했고, 18세에 불교에 입문하였다. 그후 삼각한 중흥사로 들어가 공부했으며 21세 때 계유정난 소식을 듣고는 3일간 통곡하며 보던 책들을 모두 불사지른 뒤 승려가 되어 전국 각지를 유랑한다. 사육신이 처형되던 날은 모두가 쩔쩔매던 시신 수습을 자처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그가 쓴 발문에서 방랑 시작의 동기를 '나는 어려서부터 성격이 질탕하여 명리를 즐겨하지 않고 생업을 돌보지 아니하며, 다만 청빈하게 뜻을 지키는 것이 포부였다. 본디 산수를 찾아 방랑하고자 하여, 좋은 경치를 만나면 이를 시로 읊조리며 즐기기를 친구들에게 자랑하곤 하였지만 문장으로 관직에 오르기를 생각해보지는 않았다. 하루는 홀연히 감개한 일(세조의 왕위찬탈)을 당하여 남아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도를 행할 수 있는데도 출사하지 않음은 부끄러운 일이며, 도를 행할 수 없는 경우에는 홀로 그 몸이라도 지키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였다.'고 적었다.

26세에는 관동지방을, 29세에는 호남지방을 유람하였다. 31세에는 현실에 불만을 품고 경주로 내려가 금오산에서 칩거하였으며 이때 매월당이라는 호를 사용했다. 이곳에서 「금오신화」등의 작품들이 탄생하였다고 한다.

47세에 안씨를 아내로 맞이하여 환속하는 듯하였으나 이듬해 '폐비윤씨사건'이 일어나자 다시 관동지방 등지로 방랑의 길을 나선다. 지방 청년들을 가르치기도 시와 문장을 벗삼아 유유자적한 생활을 하기도 한다. 50세에 마지막으로 찾아든 곳이 홍산 무량사이고 이곳에서 59세의 나이로 병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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