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황이야기를 읽고서"
(마쓰오카유즈루 저│연암서가)
역사에 대한 고찰은 우리를 새로운 세계로 이끈다. 인간은 유물, 유적과 함께 과거의 시대를 온전히 그려내고자 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상상이 더해진 새로운 세계가 되고 만다. 이 부분이 역사의 매력이 되기도 한다. 알 수 없는 과거를 그려가며 그 속에서 앞으로 나아갈 길을 찾는 것. 그것이 우리의 '정체성'을 바로 세울 수 있도록 하는 길인 것이다. 가끔은 몇 안 되는 열쇠로 머나 먼 역사의 길에 도달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생기기도 한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그 세계에 도달하려 하는 인간의 모습은 그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숙명이라고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돈황'은 하나의 강한 자극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것이 영국, 프랑스, 러시아, 일본... 세계 곳곳에 명성을 떨쳐 생명의 위협을 무릎 쓰고서라도 사막을 지나 도달하려하지 않았을 것이다. 무엇이 그들을 자극했을까?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 그리고 그 미지의 세계를 탐구하며 알아갈 새로운 사실들에 대한 궁금증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인간으로서의 감정임이 분명하다. 그런 어쩌면 그들에게 더 중요했던 것은 이 유적을 탐구하며 얻을 명성, 권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나를 씁쓸하게 한다.
동양중세사 강의를 들었을 때도 돈황에 대한 내용을 다루었기에 책의 내용이 더 친근했다. 돈황에 대한 상상, 그 시대 인간들이 살아가던 모습을 그려보는 것은 나에게 힘(앎에 대한 열정이랄까?)을 주는 듯 했다. 하지만 이런 힘에도 불구하고 가장 많이 든 생각은 '무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이 책의 대부분은 서양이들이 중국의 유적, 유물을 약탈하는 모습을 그려내는데, 이렇게 중국인들이 약탈당하는 것이 '무지'에서 기인된 것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이 문제는 여기서 그칠 수 없는 문제다. 무지한 이들의 재산을 빼앗아갈 수 있는 권리는 누구에게도 주어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지켜줘야 마땅한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역사'에 대한 인식은 주입된 가치일지도 모른다. 결국엔 인간의 욕심이 경제적 가치를 형성했고 서구인들에게 당시 돈황의 유산이 그 가치를 대변하는 것이었으므로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어야 마땅한 것이라 여겨졌을 것이다. 하지만 필자의 생각에 그들의 행동은 그저 욕심이었으며 개인적 호기심을 해소시키려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처럼 보인다.
이런 입장에 대해 역사학자들은 유물에 대한 탐구와 연구에 대한 소명, 가치, 필요성을 어필할 것이다. 그러나 그 유물을 사용하고 만든, 그 시대의 사람들의 것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면 그것들을 인위적으로 이동시키고 들여다보는 행동은 옳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썩고 없어지더라도 그대로 두는 것이 오히려 맞는 행동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학문에는 국경이 없으나 문화유산에는 국경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호기심과 불완전성은 그것들을 끊임없이 발굴하고 탐구하려 할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책 속 중국인들의 모습은 당시 그 유적을 짐처럼 여기는 듯 했다는 것이다. 어쩌면 유적을 발굴하려는 서양인들의 모습을 이해하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 누구보다 안타까운 것은 주지였다. 그 누구도 관심 갖지 않던 너덜너덜한 휴지조각을 모두가 방치하던 가운데 드디어 서구인들이 그 가치를 알아주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국보라는 둥 문화재라는 둥 떠들어대며 자신을 범죄자 취급하는 것이 얼마나 억울했을까. 그는 격변의 시기의 피해자이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서구인들이 그 유물을 손아귀에 쥐고 돌려주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역사에 대한 연구, 보존' 을 핑계로 한 도둑질은 정당화 될 수 있는가? 그저 유치한 욕심일 뿐이다. 이 상황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가. 무지로 인함인가? 국력의 문제인가? 아니다. 그저 빼앗아 간 자들의 문제라고 본다. 강대국의 심리전에 놀아나지 않아야 한다.
이리도 중국인의 입장에 공감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나라 역시 중국과 비슷한 입장에 처해있기 때문이다.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직지심체요절 등 다수의 문화유산을 빼앗겼고 여전히 타국에 보관되어 있다. 그것에 대한 소유권조차 강하게 주장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분통하지 않을 수 없다. 외규장각 도서 반환 문제로 수년간 프랑스와 갈등을 벌였던 우리의 모습은 코미디 아닌 코미디였다.
프랑스는 그 문서를 합법적으로 구매했기 때문에 반환이 어렵다고 말했다. 돈황도 마찬가지였다. 스타인, 펠리오 모두 주지에게 돈을 주고 가져갔다. 이 상황은 정의로운가? 동등한 입장에서 정당하게 협상한 것인가? 아니다. 힘의 논리에 대한 위압감에 맞서 이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힘의 논리에 과도하게 집중하고 있지 않은가 싶기도 했다.
결국 스타인과 펠리오가 돈황 유적을 손에 쥔 것은 그들과 그들 국가의 명예를 위함이었다. 온전히 그들의 그것을 위해 탐험대라는 구실 하에 타국의 유산을 훼손시킨 것이다. 이런 서구인들에게 우리는 유산의 가치를 깨우쳐줬다고 고마워해야 하는가? 학술에 대한 열정을 칭찬해야 하는가? 문제의 본질에 대한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제국주의적 야욕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으며 제국주의 국가들은 피해국에게 진정한 사과를 하지 않았다. 표면적인 사과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실질적(경제적, 정신적) 책임을 지지 않은 그들의 태도를 말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영박물관, 루브르 박물관의 가치의 실체에 문제를 제기하는 바이다.
돈황의 역사적 가치가 입증된 후, 중국 지식인들은 그 유서를 빼돌렸다. 여기서 포인트는 역사적 가치가 입증된 후에 일어난 사실이는 점, 지식인들이 저지른 일이라는 점이다. '무지'라는 단어는 주지보다 이들에게 더 적합한 단어가 되었다. 이들 지식인과 연결되는 사람, '장효원'은 자신을 '배운 사람'이라 자부하면서도 서구인들의 손아귀에 놀아났다. 스타인이 시키지도 않았지만 돈황을 빼돌릴 수 있도록 앞정섰고 주지에게 끊임없이 악마의 속삭임과 같은 설득을 하였다. 많은 이들의 욕심과 이해관계를 둘러싼 혼란 속에서도 유일하게 굳건했던 단 하나의 사실은 돈황은 여전히 신비함이 깃든 유물이라는 사실이라는 것이었다.
이 책은 소설의 형식을 빌어 돈황 약탈의 비극적 역사를 그려냈다. 이는 결과적 사실 뿐 아니라 당시의 구체적 상황을 상상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으나 돈황 자체의 궁금증에 대한 해결책은 되지 못했다는 단점도 있었다. 돈황학 입문자에게 추천할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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