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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레토와 피구의 후생경제학 :: 파레토최적, 공리주의 등

by 윤쓰다 2022. 4. 1.

파레토와 피구의 후생경제학


1. 피구의 후생경제학과 파레토의 후생경제학의 차이점

피구와 파레토의 후생경제학은 공리주의의 정밀화를 통해 사회 전체의 경제적 후생을 극대화 시키는 데 목적을 두었다. 그런데 피구의 후생경제학은 공리주의에 내재된 '효용의 가측성 문제'와 '효용의 개인 간 비교 문제'를 그대로 떠안고 있었다. 즉, 주관적인 효용을 측정하는 문제와 서로 다른 개인 간의 효용을 비교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이에 파레토는 개인 간 효용 비교가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도 자원 배분의 효율성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인 '파레토 최적' 개념을 제시하였다. 파레토 최적은 어느 시점의 재산 분배 상태를 주어진 것으로 가정할 때, 사회 내의 어떤 사람의 후생을 감소시키지 않고서는 다른 사람의 후생을 증가시킬 수 없도록 자원이 잘 배분되어 있는 상태를 말한다. 파레토 최적 개념은 피구의 후생경제학이 안고 있던 효용의 측정 문제와 개인 간 비교 문제를 후생경제학에서 제거할 수 있도록 해줬다.


2. 파레토 최적은 공평성과 무관할까?

파레토 최적은 소득 분배와는 관계없는 개념이다. 아무리 불균등한 상태가 되더라도 파레토 최적은 이루어진다. 예컨대 희소자원이 모두 어느 특정 개인에게 분배되어 다른 사람들에게 배분되지 않는다고해도 파레토 최적인 배분이 이루어질 수가 있다. 따라서 미시경제이론에서 말하는 합리적 자원 배분이란 균등한 소득 배분 상태 (균등한 물적 자원 분배에 기초한) 와는 관계 없고, 주어진 소득 분배 하에서 소비자들의 욕구와 수요를 반영하는 산출물이 효율적인 방법으로 생산되기만 하면 이루어지는 것으록 간주된다. 따라서 평등성, 공정성 등의 측면과 전혀 무관한 것이다.


3. 공리주의와 후생경제학의 연관성

후생경제학은 자유주의 경제학에 공리주의 철학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것이다. 공리주의는 벤담의 양적 공리주의와 밀의 질적 공리주의로 구분되는데, 후생경제학은 양적 공리주의를 받아들인다. 후생경제학은 사회 전체의 경제적 후생을 극대화시키는 데 경제학의 목적을 두고 공리주의의 정밀화를 통해 그것을 이루고자 하였다. 그런데 후생경제학은 공리주의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그대로 떠안고 있었다. 첫째, 효용은 주관적인 것이므로 이를 측정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둘째, 서로 다른 개인 간 효용을 어떻게 비교할 수 있을 것인가.



4. 피구의 후생경제학이 갖는 문제점은?

피구 후생경제학의 이론적 체계는 벤담의 공리주의를 기반으로 한다. 피구의 후생경제학은 공리주의의 정밀화를 통해 사회 전체의 경제적 후생을 극대화시키는 데 목적을 두었다. 그러나 피구의 후생경제학은 공리주의의 자체적인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하였다. 피구 후생경제학의 기초 전제는 경제적 후생과 국민 소득이 서로 대응 관계에 있으며, 개인의 주관적인 효용을 측정하고 합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는 화폐의 한계 효용이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동일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소득 분배가 불평등하고, 개인마다 효용함수가 다르기 때문에 효용의 합계로 경제적 후생을 측정할 수 있다는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


5. 파레토 최적이란? 파레토 최적 이론의 문제점은?

파레토 최적이란 어느 시점의 재산 분배 상태를 주어진 것으로 가정할 때, 사회 내의 어떤 사람의 후생을 감소시키지 않고서는 다른 사람의 후생을 증대시킬 수 없도록 자원이 잘 분배되어 있는 상태를 말한다. 이는 가치 판단을 배제하여 피구 후생경제학의 효용의 측정 불가능성 문제를 회피하였다. 즉, 파레토 최적에서는 개인적 선호를 측정하거나 비교할 수 없다. 파레토 최적은 어느 시점의 재분배상태를 주어진 것으로 가정할 때, 사회 내 어떤이의 후생을 감소시키지 않고서는 타인의 후생을 증대시킬 수 없도록 자원이 잘 배분되어 있는 상태를 말한다. 그러나 대립을 수반하지 않는 사회적 개선이 일어나는 사회, 정치, 경제적 상황은 드물기 때문에 파레토최적은 경제 정책의 판단에 있어 현실적인 판단 기준이 될 수 없다. 또한 파레토 최적은 현존하는 부의 분배 상태를 받아들여 사회 후생의 극대화가 어디인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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