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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상/나의 에세이

[003] 휴가

by 윤쓰다 2020. 8. 22.


우리집은 어릴 때부터 아빠가 너무 바쁘셔서 휴가를 자주 못 갔다.

시골이라 그런지 멋들어진 휴가를 보내는 친구가 별로 없긴 했지만 그와중에 휴가를 꼭 가는 집도 있었기에 그 친구들이 마냥 부러웠었다. 나도 어른이 되면 어디로든 자주 떠나고 싶다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도 그 와중에 기억에 남는 여름휴가에 관한 기억에 몇 개 있다.

 

큰이모네와 갔던 완도 명사십리.

우리 가족은 마트를 가든 근교를 가든 외가 식구들끼리 차 두세대를 끌고 단체로 이동한 적이 많았다. 북적북적한 분위기가 좋았고, 나를 챙겨주는 언니들이 좋았다.

명사십리에 갔던 날은 하필 비가 왔다. 그래서 출발 직전까지도 가는 게 맞는지 고민했었다. 다행히 비가 조금 그쳐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어릴 때부터 난 어디든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완도로 갈 수 있었고, 보슬보슬 비가 오는 와중에 바다에서 얼마나 신나게 놀았는지 모른다.

 

입술이 파래지도록.

바닷물을 마셔서 구토가 나왔지만 그 고통을 잊을 정도로.

 

초등생, 그 어린 마음 속에,

우리 가족은 그 어느 가족보다 화목하고 행복한 가족이라 느껴졌고, 자랑스러웠고, 언제나 든든했다.

우리 언니들이 제일 예뻤고, 우리 가족들이 제일 멋졌다.

언니들처럼 크고 싶었고, 이모처럼 나이들고 싶었다.

 

이모가 돌아가셨다.

이숙이 재혼하셨다.

이숙이 우리집에 빌린 돈을 갚지 않았다.

 

추억은 그저 추억으로 남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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